Wednesday's child, Mercredi

내 이야기 - 001 본문

=多餘的話=2009

내 이야기 - 001

mercredi 2009. 7. 6. 20:46


일기를 쓰지 않은지 한 5년. 자기성찰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고 편하게 편하게 살겠다 하고 살아온지 오래.
집착적인 수준의 자기 검열과 자아몰입도, 폐인루저잉여를 만들 정도의 방관도 둘 다 겪어봤다.
이제는 좀 균형 잡힌 수준에서 나 자신을 돌보고 가꾸며 지낼 필요를 느낀다.
오늘부터 내가 살아온 기억들을 조금씩 되돌아보며 기록하려고 한다.
옛날처럼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는 없을거다.
그렇지만 평생에 한 번은, 나이를 더 먹기 전에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쓸 데 없는 힘은 빼고 편하게 내 이야기들을 써야겠다.




어린시절 이야기 1.

1. 유년기와 성장기에 관한 기억

나는 사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다. 무남독녀인데다 9남매 중에서 7번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라나셨던 어머니께서는 내게 정말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배풀어 주셨다. 항상 물려받은 옷과 교과서, 학용품 등(그것도 처음 물림이 아니라 여러 형제들의 손을 거친)에 한이 맺히셨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날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입을 새 옷을 사는 것이셨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셨다. 성격이 무뚝뚝하신 편이라 우리 딸, 우리 공주님 이런 말들을 하면서 드러나게 귀여워해주셨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고3 때, 나의 대입을 가장 가까이서 신경써주고 싶으셔서 회사의 해외 발령도 무시하고 계속 한국에 계셨다. (그래서 2년 뒤에 명예퇴직을 당하셨다. 이게 꼭 전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명예퇴직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부모님은 구리시에 있는 괜찮은 아파트를 파시고 관악구로 이사를 하셨다. 지금 그 집이 가격이 거의 2배인가 3배로 뛰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관악구의 아파트는 그렇게 많이 오르지 못했다. 이 점은 부모님께 아주 많이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은 주말마다 우리 가족이 교외로 놀러다녔던 일이다. 술도 별로안 좋아하시고 스포츠나 낚시같은 남자들만의 취미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처음 마련한 우리집 자가용에 나와 엄마를 태우고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다니는 것이 유일한 취미셨던 것 같다. 양평이나 청평, 가평 등 경기도의 교외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바깥 구경도 하고 가족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다니곤 했다. 우리집에는 앨범이 6~7권 정도 있는데 거의가 다 내가 어린 시절에 찍은 것들이다. 그러고보니 아빠는 내 사진도 정말 많이 찍어주셨다.

아버지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남아 있는데, 내가 아마 일곱살 때였을 것이다. 그 때 텔레비전에서는 '쉬라의 집'이라는 인형 집 장난감 광고가 한창이었다. 인형집의 좌우 벽면을 바닥으로 내리면 널찍한 인형집이 나오는 꽤 그럴듯한 장난감이었다. 그 때 나는 그 광고를 보고 저걸 갖고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간절히 그 인형집이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인형집은 비싼 장난감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쉽게 사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들도 마치 성인들이 애인이 샤넬백(혹은 바쉐론콘스탄틴 시계?)을 사주면 좋겠지만 너무 비싸서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듯이 장난감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쉬라의집이 좀 신기하긴 했지만 당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장난감은 바로 미미의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왕 인형집을 가질 거, 미미의집으로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고 있는 아버지께 "아빠! 나 쉬라의 집 사줘."라고 말을 했다. 왜냐면 그냥 그 말이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왜 하고싶었냐면,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행동들을 왠지 한 번 따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난감이나 새 옷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남이 하는 행동들 자체를 한 번 따라해 보는 것에 대해 묘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의 목표는 그 말, "아빠, 나 뭐 사줘!"라는 말을 한 번 해 보는 데에 있었다. 위에서 말했던 이유들로 설명이 되지만, 쉬라의집은 내 궁극적인 목표가 절대 아니었다.  여튼 그랬기 때문에, 설마 아빠가 그 비싼 걸 사주시겠어라는 생각에 그냥 사달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느지막히 일어나고 아빠는 이미 출근을 하셨던 아침에 내 방에는 쉬라의집이 놓여있었다. 정말 깜짝 놀랬다. 딱 한 번, 그것도 그렇게 간절히 졸랐던 것도 아닌데 눈을 떠 보니 내 방에 쉬라의집이 놓여있다니. 그 날 엄마는 나랑 같이 놀아주실 때 인형집을 같이 꾸며주시면서 "니가 많이 갖고싶어해서 아빠가 큰 맘 먹고 사주신거란다. 아껴서 잘 가지고 놀으렴."이라고 말씀하셨다. 차마 나는 별로 갖고싶지 않았는데 아빠가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덜컥 사오신거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때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비록 자신의 딸이긴 하지만 부모로부터 좋은 장난감을 선물받을 수 있는 내가 조금은 부러우셨던 것도 같다.

오늘은 이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