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중고딩들 가르치다가 상위권, 중위권, 중하위권들을 두루 겪어보며 느낀 점이 있다.

상위권 아이들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나와 공통점이 많은 아이들이니까.

내가 정말 신기하기도 했고 파악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은 바로 중하위권 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을 까먹거나

그 나이 그 학년에 응당 알아야 할 지식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당황스러워하지 않는다.

"너 그거 정말 모르니?" 하고 물어봐도 안색이 전혀 변하지 않고 매우 태연하다.

이 아이들을 공통점은 참 착하고 온순하며 싸가지가 "있다"는 것인데

내 생각에 그 나이 그 학년이면 의당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에도

그 선량한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나 당황의 기색도 비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나는 정말 풀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린 듯한 기분에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다. 






어제 우연히 우리 학교 동문을 한 명 만나서 같이 술을 마셨다.

이제 가을이라고 술집에서는 이브 몽탕의 고엽이 흘러나왔다.

난 개인적으로 고엽이라는 노래를 퍽 좋아하는 터라 신이 나서

"앗 고엽이다! 이 노래 너무 좋지 않아요?"라고 동문분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분은 고엽이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으셨다.

난 눈치도 없이 그 노래 매우 유명한 노래라고 떠들어댔다.

조금 후,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 분은 인터넷으로 샹송 고엽에 대해 검색을 해보셨고 내가 돌아오고나자

영어 번안곡은 Autumn Leaves가 아니냐고 물어보며 그 노래를 찾아봤다고 이야기하셨다.




순간 내가 가르치는 착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은 아이들과 이 분, 내지는 나의 차이점을 느끼면서
 
뭔가 실마리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대생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자신에게 생소한 지식이나 사실이 나올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만 빼고 다들 아는 것 같은 분위기일 때,

약간의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느끼고는 집에 가서 찾아본다.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걸 공개하는 부류와

침묵이라는 안전한 전략을 통해 모른다는 티를 내지 않는 부류가 있다.

여튼 공통점은 나중에라도 그게 뭔지 꼭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지식 영역을 조금이나마 확장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생각에 연고포카급도 이런 반응 보일 것 같다.




하지만 비서울대생(내지는 중위권 대학 이하 출신들)은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하고 넘어간다.

나와 함께 일하는 4년제 중하위권 출신 강사들도 어울리다 보면 이런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내 생각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는 상태가 뭘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나타날 때 어서 그 미처 알지 못 한 지식 - 이라는 몹을 때려잡지 않고서는 차마 넘어갈 수 없는 것 같다.

이것은 결국 학구열이나 지식에 대한 욕구, 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뭐 결국 이런 애들은 계속 공부를 잘 하게 된다.




반면에 비서울대생들은

세상에는 자기가 모르는 것들이 많은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다 자기만 모르는 지식이나 사실이 나와도

그냥 자기가 모르는 여럿 중 하나일 뿐이라 여기고는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뭔가 아는 나" 보다 "뭘 모르는 나"에 더 익숙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사실 내 할 일은 애들 성적과 공부 스킬 높이는 거니까;;)

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아는 나"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를 아는 나"보다  "뭔가를 모르는 나"에 더 익숙한 것이 꼭 다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뭔가를 아는 나"나 "많은 것들을 아는 나"라는 정체성은

공부를 잘 하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밖에는 달리 쓸모 있는 곳이 별로 없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라고 인정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더 겸손한 것 같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닥칠 때 크게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아는 나"에 익숙한 자들 보다 훨씬

여유 있고 유연하게 삶의 문제들에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안 그러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학벌이나 학력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살아온 것 같다.

세상 어디에도 배울 것이 있고, 똑똑하고 머리 좋은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산적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