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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02 "뭔가를 아는 나"와 "모르는 게 많은 나"
- 2009/07/06 내 이야기 - 001
- 2009/06/30 19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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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餘的話=2009 2009/10/02 17:09"뭔가를 아는 나"와 "모르는 게 많은 나"
상위권 아이들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나와 공통점이 많은 아이들이니까.
내가 정말 신기하기도 했고 파악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은 바로 중하위권 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을 까먹거나
그 나이 그 학년에 응당 알아야 할 지식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당황스러워하지 않는다.
"너 그거 정말 모르니?" 하고 물어봐도 안색이 전혀 변하지 않고 매우 태연하다.
이 아이들을 공통점은 참 착하고 온순하며 싸가지가 "있다"는 것인데
내 생각에 그 나이 그 학년이면 의당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에도
그 선량한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나 당황의 기색도 비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나는 정말 풀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린 듯한 기분에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다.
어제 우연히 우리 학교 동문을 한 명 만나서 같이 술을 마셨다.
이제 가을이라고 술집에서는 이브 몽탕의 고엽이 흘러나왔다.
난 개인적으로 고엽이라는 노래를 퍽 좋아하는 터라 신이 나서
"앗 고엽이다! 이 노래 너무 좋지 않아요?"라고 동문분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분은 고엽이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으셨다.
난 눈치도 없이 그 노래 매우 유명한 노래라고 떠들어댔다.
조금 후,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 분은 인터넷으로 샹송 고엽에 대해 검색을 해보셨고 내가 돌아오고나자
영어 번안곡은 Autumn Leaves가 아니냐고 물어보며 그 노래를 찾아봤다고 이야기하셨다.
순간 내가 가르치는 착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은 아이들과 이 분, 내지는 나의 차이점을 느끼면서
뭔가 실마리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대생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자신에게 생소한 지식이나 사실이 나올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만 빼고 다들 아는 것 같은 분위기일 때,
약간의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느끼고는 집에 가서 찾아본다.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걸 공개하는 부류와
침묵이라는 안전한 전략을 통해 모른다는 티를 내지 않는 부류가 있다.
여튼 공통점은 나중에라도 그게 뭔지 꼭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지식 영역을 조금이나마 확장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생각에 연고포카급도 이런 반응 보일 것 같다.
하지만 비서울대생(내지는 중위권 대학 이하 출신들)은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어? 하고 넘어간다.
나와 함께 일하는 4년제 중하위권 출신 강사들도 어울리다 보면 이런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내 생각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는 상태가 뭘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나타날 때 어서 그 미처 알지 못 한 지식 - 이라는 몹을 때려잡지 않고서는 차마 넘어갈 수 없는 것 같다.
이것은 결국 학구열이나 지식에 대한 욕구, 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뭐 결국 이런 애들은 계속 공부를 잘 하게 된다.
반면에 비서울대생들은
세상에는 자기가 모르는 것들이 많은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다 자기만 모르는 지식이나 사실이 나와도
그냥 자기가 모르는 여럿 중 하나일 뿐이라 여기고는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뭔가 아는 나" 보다 "뭘 모르는 나"에 더 익숙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사실 내 할 일은 애들 성적과 공부 스킬 높이는 거니까;;)
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아는 나"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를 아는 나"보다 "뭔가를 모르는 나"에 더 익숙한 것이 꼭 다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뭔가를 아는 나"나 "많은 것들을 아는 나"라는 정체성은
공부를 잘 하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밖에는 달리 쓸모 있는 곳이 별로 없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라고 인정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더 겸손한 것 같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닥칠 때 크게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아는 나"에 익숙한 자들 보다 훨씬
여유 있고 유연하게 삶의 문제들에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안 그러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학벌이나 학력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살아온 것 같다.
세상 어디에도 배울 것이 있고, 똑똑하고 머리 좋은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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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餘的話=2009 2009/07/06 20:46내 이야기 - 001
일기를 쓰지 않은지 한 5년. 자기성찰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고 편하게 편하게 살겠다 하고 살아온지 오래.
집착적인 수준의 자기 검열과 자아몰입도, 폐인루저잉여를 만들 정도의 방관도 둘 다 겪어봤다.
이제는 좀 균형 잡힌 수준에서 나 자신을 돌보고 가꾸며 지낼 필요를 느낀다.
오늘부터 내가 살아온 기억들을 조금씩 되돌아보며 기록하려고 한다.
옛날처럼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는 없을거다.
그렇지만 평생에 한 번은, 나이를 더 먹기 전에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쓸 데 없는 힘은 빼고 편하게 내 이야기들을 써야겠다.
어린시절 이야기 1.
1. 유년기와 성장기에 관한 기억
나는 사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다. 무남독녀인데다 9남매 중에서 7번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라나셨던 어머니께서는 내게 정말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배풀어 주셨다. 항상 물려받은 옷과 교과서, 학용품 등(그것도 처음 물림이 아니라 여러 형제들의 손을 거친)에 한이 맺히셨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날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입을 새 옷을 사는 것이셨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셨다. 성격이 무뚝뚝하신 편이라 우리 딸, 우리 공주님 이런 말들을 하면서 드러나게 귀여워해주셨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고3 때, 나의 대입을 가장 가까이서 신경써주고 싶으셔서 회사의 해외 발령도 무시하고 계속 한국에 계셨다. (그래서 2년 뒤에 명예퇴직을 당하셨다. 이게 꼭 전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명예퇴직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부모님은 구리시에 있는 괜찮은 아파트를 파시고 관악구로 이사를 하셨다. 지금 그 집이 가격이 거의 2배인가 3배로 뛰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관악구의 아파트는 그렇게 많이 오르지 못했다. 이 점은 부모님께 아주 많이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은 주말마다 우리 가족이 교외로 놀러다녔던 일이다. 술도 별로안 좋아하시고 스포츠나 낚시같은 남자들만의 취미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처음 마련한 우리집 자가용에 나와 엄마를 태우고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다니는 것이 유일한 취미셨던 것 같다. 양평이나 청평, 가평 등 경기도의 교외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바깥 구경도 하고 가족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다니곤 했다. 우리집에는 앨범이 6~7권 정도 있는데 거의가 다 내가 어린 시절에 찍은 것들이다. 그러고보니 아빠는 내 사진도 정말 많이 찍어주셨다.
아버지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남아 있는데, 내가 아마 일곱살 때였을 것이다. 그 때 텔레비전에서는 '쉬라의 집'이라는 인형 집 장난감 광고가 한창이었다. 인형집의 좌우 벽면을 바닥으로 내리면 널찍한 인형집이 나오는 꽤 그럴듯한 장난감이었다. 그 때 나는 그 광고를 보고 저걸 갖고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간절히 그 인형집이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인형집은 비싼 장난감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쉽게 사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들도 마치 성인들이 애인이 샤넬백(혹은 바쉐론콘스탄틴 시계?)을 사주면 좋겠지만 너무 비싸서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듯이 장난감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쉬라의집이 좀 신기하긴 했지만 당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장난감은 바로 미미의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왕 인형집을 가질 거, 미미의집으로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고 있는 아버지께 "아빠! 나 쉬라의 집 사줘."라고 말을 했다. 왜냐면 그냥 그 말이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왜 하고싶었냐면,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행동들을 왠지 한 번 따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난감이나 새 옷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남이 하는 행동들 자체를 한 번 따라해 보는 것에 대해 묘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의 목표는 그 말, "아빠, 나 뭐 사줘!"라는 말을 한 번 해 보는 데에 있었다. 위에서 말했던 이유들로 설명이 되지만, 쉬라의집은 내 궁극적인 목표가 절대 아니었다. 여튼 그랬기 때문에, 설마 아빠가 그 비싼 걸 사주시겠어라는 생각에 그냥 사달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느지막히 일어나고 아빠는 이미 출근을 하셨던 아침에 내 방에는 쉬라의집이 놓여있었다. 정말 깜짝 놀랬다. 딱 한 번, 그것도 그렇게 간절히 졸랐던 것도 아닌데 눈을 떠 보니 내 방에 쉬라의집이 놓여있다니. 그 날 엄마는 나랑 같이 놀아주실 때 인형집을 같이 꾸며주시면서 "니가 많이 갖고싶어해서 아빠가 큰 맘 먹고 사주신거란다. 아껴서 잘 가지고 놀으렴."이라고 말씀하셨다. 차마 나는 별로 갖고싶지 않았는데 아빠가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덜컥 사오신거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때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비록 자신의 딸이긴 하지만 부모로부터 좋은 장난감을 선물받을 수 있는 내가 조금은 부러우셨던 것도 같다.
오늘은 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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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餘的話=2009 2009/06/30 16:0319금 꿈
어머니께서 그만 좀 자라고 깨우셔서 눈 떠보니 30분 알람 맞춰놓은 것 보다 훨씬 자버렸다.
너무 많이 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꿈이 좀 야했는데 그 여운에 빠져서, 잠 기운에 젖어서 허우적허우적 했던거다.
꿈에서 나는 갑자기 남자가 되어 있었다. ( 나 여잔데 -_-;;;)
그것도 멋지구리하게 수염을 살짝 기른 시부야 간지남 스타일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야동을 보고 있었다.(뭐지;;;)
그것도 상큼한 여고생들이 단체로 나오는 야동이었고,
전에 이미 한 번 봤던 거라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오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꿈 속의 내가 -_-)
그.. 그러니까 여고생들이 까르르 깔깔 웃으면서 교문 밖으로 뛰어나가는데;
그 날이 성교육+실습날이었던거다. (무슨 성교육에 실습까지 해준단 말인가; 아.. 야동이니 이해를 해주자-_-;)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튕기며 팔랑팔랑 뛰어가던 여고생들은
교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치마와 분홍색(슈발 하필 분홍; 아마도 키티나 모모판다같은 긔여운 캐릭들이 그려진;;) 팬티를 훌훌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마구 뛰어갔다.
바로 그들의 첫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골목 구석구석엔 팽팡하게 발기가 된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곧 그녀들을 품을 참이었다.
이게 정말 꿈이 맞는 게,
그 야동보는 젊은이었던 나는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여고생들을 따라 뛰어갔다.
이유는 뭐 뻔하지-_-
그런데 갑자기 그 많던 여고생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ㄱ자 형태의 회색빛 골목길에 나만 혼자 남았는데
코너 부분에 철창이 세워져 있었다.
문은 들어오는 문 나가는 문 이렇게 두 개였는데
쇠사슬로 묶고나서 자물쇠로 잠그는 식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벙 쪄야 당연한 건데
나는 아주 조금, 살짝만 당황했고, 금방 그 상황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그 철창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여전히 팽팽하게 발기가 된 채로;;)
속으로는 여기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들어가면 잠궈줄 사람이 없을테니
내가 잠그고나서 위로 타고 올라가서 이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기모노를 입은 하늘하늘하고 요염한 고양이상의 여인이 나타났고
(유녀 복장이었다-_-;;;;게이샤랑 유녀랑 차이 알죠? ㅠㅠ;)
철창 안은 푸른 갈대밭이 되어있었다(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그리고 우리는 진하게 정사를 나누려고 열심히 애무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그만 좀자라고 깨우셨다.
-_-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야한꿈을 꿨다는 데에서 만족해야겠다.
좀 아깝기도 해서...
까먹을까봐, 까먹기 전에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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