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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서평;ㅁ;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二期

허접서평;ㅁ;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mercredi 2005. 3. 31. 11:38
<서평>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저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르네상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시각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세동안 묻혀있던 고전시대의 자유롭고 찬란한 인류의 정신과 문화가 르네상스와 함께 부활해서 개인을 다시금 발견하게 하고 근대가 탄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중세라는 정체된 암흑시대와 대비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근대로 향하는 도약과 발전의 시기라는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록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정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부르크하르트의 연구가 탁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이 연구가 널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서구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르네상스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르네상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 시각은 이 책에서부터 기원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서구인들뿐만 아니라 비서구인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르네상스에 대한 표준적이고 전반적인 지도를 제시했다고 해서 그것의 모든 내용과 논지가 르네상스에 대한 인식에 100% 반영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정독하고 나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와 2부에서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정치적인 틀을 이루는 국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 국가를 이루는 개인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물적(物的)인 틀거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3부와 4부에서는 고전 문화의 부활과 인간의 재발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문화적 배경(일반적인 의미의)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5부와 6부에서는 당시 이탈리아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문화와 사람들의 심성 등에 주목해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는 르네상스의 첫 번째 특성을 고찰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가장 널리 알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지식은 이 책의 3부와 4부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최근 들어 기존의 르네상스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들이 대두되고 문화사 관련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면서 당시의 국가나 정치, 그리고 혹은 풍속에 관해서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각이나 부수적인 보충설명 정도일 뿐이지 하나의 표준적인 시각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했다.

이 책은 솔직히 읽기가 그리 평이한 책은 아니다. 시간과 분야를 종횡으로 넘나드는 부르크하르트의 서술 때문이기도 하고 공평하게 채택된 서로 모순되는 사실들이 대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쉽게 바로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보통 역사서술이라고 하면 저자의 논지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사실들이 일관성 있게 저자의 시각에 따라 나열되는 것을 떠올려왔는데 부르크하르트의 이 저작을 읽으면서는 대체 저자의 논지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르네상스에 대한 표준적인 시각을 정립시킨 저작이라 알려져 있지만 저자가 예로 보여주는 르네상스인들의 모습에선 오히려 비(非)르네상스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으며 - 이성과 미신의 공존, 신앙을 대하는 인문주의자들의 태도 등등 -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르네상스 시기 문화의 비(非)르네상스적인 모습을 파헤치는 것도 아닌 전개는 마치 르네상스라는 미로 안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미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겹겹이 치밀하고 조밀하게 조합되어있는 느낌이었다.

부르크하르트의 겹겹이 복잡한 미로를 따라 나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대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책은 르네상스의 전반적인 면모를 제시한 책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읽고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르네상스보다 더, 훨씬 더 르네상스인 것이 펼쳐져 있다. 맥을 쉽게 따라잡기 힘든 종횡을 가르는 서술과 한 가지 특성으로 묶어내기 결코 쉽지 않은 사실들의 나열을 통해 저자는 ‘르네상스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 역사란 한 가지 맥락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맥락들이 다양하게 얽히고 꼬여 그 형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사서술이란 역사가가 그 복잡한 사건의 실타래 속에서 한 가닥을 뽑아내어 알아보기 쉽게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르네상스라는 하나의 역사 덩어리를 독자들에게 던져준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해석도 가해지지 않은 사실들의 조합을 무책임하게 던져주었다는 말이 아니다. 한 가닥만을 뽑아내어서 엉킨 마디를 풀고 펴서 손상될 위험이 많은 예민한 부분들을 섬세하게 원래 모습 그대로 캐내었다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가, 비록 페이지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빠짐없이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횡의 서술은 이 저작에 가장 접합한 서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통해 부르크하르트는 500년 전의 역사를 잘 정제해 내어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역사란 한마디의 말이나 한가지의 흐름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