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나뭇잎이 가르쳐준 것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나뭇잎이 가르쳐준 것

mercredi 2004. 10. 25. 17:09
비유를 하자면 가을은 모든 것이 다 익는 계절인 걸까요.
여름, 그 뜨거운 열기로 덥혀지고 자란 것들이 이제
다 익어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단풍이 다 거기서 거긴줄 알았습니다.
단풍나무는 빨강, 은행나무는 노랑, 이 둘 빼고 나머지는 다 갈색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만 본다더니
오늘 문득 길을 가다 나뭇가지에 머리가 걸려서 한 번 더 쳐다본 라일락 나무는
짙은, 아주 짙어서 매혹적인 자주색으로 물을 들였습니다.
신기해서 다른 나무들도 유심히 바라보니 다 다릅니다.
얼마전에 이야기한 벚나무는 피 같은 붉은 색, 아니면 노란색
일본 목련은 회색 섞인 고동색
플라타너스는 밝은 갈색

여름엔 모두 같은 초록색이었는데 이제는 각기 다른 색깔들을 드러냅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저녀석들도 이제 다 익어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단풍이 드는 원리가 아마 엽록체가 그 기능을 다 해서
원래 잎사귀 안에 들어있던 색소들이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라지요.
그렇게 때가 차고 자랄대로 다 자랐으니 이제 본래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드러내는건 아닐런지
저녁 햇살에 반짝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직은 초록색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붉을까요 노랄까요 갈색일까요 아니면 아무도 상상 못 한 그런 색깔일까요.
많이 궁금하지만 어서 익어서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냥 계절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다 보면 언젠가 저도 모르게 드러나겠지요.
제 인생의 가을이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기를 바라며
오늘의 작은 깨우침을 이렇게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