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초대형 가오리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초대형 가오리

mercredi 2003. 10. 11. 17:01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어머니와 테레비를 보고 있는데 동해안에서 잡힌 엄청나게 큰 가오리 이야기가 나왔어. 길이 3미터, 무게 3톤 가량의 무지무지 큰 가오리. 보통 가오리는 1미터에 8키로 정도 밖에 안 나간대. 정말 신기했지. 어린시절 어린이 잡지에서 읽었던 대형 오징어 이야기와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양박물관에서 본 애기 목욕탕 만한 조개껍데기가 그리고 해저 이만리에 나오는 거대한 문어까지... 가오리로부터 시작한 바다친구들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고 바다에 대한 일종의 경이감까지 드는 것 같더라구. 이렇게 티브이로 보는 나도 그런데 그 가오리를 직접 집은 사람들, 포구에서 직접 가오리를 본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신기하고 기가 막혔을까. 그런데 나는 더 이상 감상적인 경이로움에만 젖어있을 수는 없었어. 그 큰 가오리 통채로 사서는 크레인에 대롱대롱 메달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기 횟집에 이렇게 큰 가오리 있으니까 먹으러 오라는 횟집 주인이 나온거야. 물론 그 사람이 가오리 달고 다니는 장면도 나왔구. 그렇게 큰 가오리는 분명 신기하고 다른 무엇 보다도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것이기는 해. 그렇지만 바다에서 잡히는 순간부터 꼬리가 부러져서 끊길락말락 하고 온 몸에 피멍이 든 데다 아가미에선 계속 피가 흐르는 가오리가, 흡사 교수대와도 같은 크레인에 아가미가 꿰인 채 매달려 원망스러울 정도로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서 디룽거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처참했어.

사실 우리나라 근해에서는 그렇게 큰 가오린 안 잡힌대. 그런 종류는 좀 더 남쪽 바다에 산다는 거야. 그런데 요사이 동해 수온이 1.2도 정도 올라가서 난류를 타고 그 녀석들이 동해까지, 대한민국의 영해인 동해까지 올라온 게지. 동해 수온 상승은 온난화 현상 때문이기도 하대. 다른 나라에서도 가오리를 먹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녀석들이 참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사람의 먹이감이 될 수도 있어. 그치만 제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해 낙시와 그물로 잡히면서 꼬리가 끊어져 나가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아가미에선 피가 흐르고 자신을 지켜주던 가시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빼앗긴 가오리, 물에서 나와 이미 죽은, 죽어가는 가오리.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비참한데, 그 빌어먹을 타고난 큰 몸뚱이 때문인지 처참함은 다른 고기들에 비해 몇 십 배인데 그런 녀석을 교수대에 매달고 시내를 달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야만이라는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어. 가오리가 유린당한다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포구에서, 혹은 학교나 연구소에서 가오리를 해체하는 장면이 나았더라면 야만이나 유린이라는 단어까지는 떠오르지도 않았을거야. 그렇지만 가오리를 높이 달아매고 거리를 달리며 사람들에게 이보시오 신기한 가오리 구경하시오 하는 건 정말이지...

가오리야 내가 왠지 미안하구나. 왜 하필 동해로 왔니. 동해로 와도 먼 바다에 있지 왜 가까운 바다로 왔니. 사람들의 눈요깃거리, 그것도 그리 반가운 존재도 아닌 공포를 동반한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가 결국 너는 조각조각나서 여러 사람들의 배를 불렸고 그 집의 매상도 올려줬구나. 가오리야 나는 왜 그 아이러니 하게도 맑았던 하늘을 배경으로 디룽거리던 니 모습에서, 놀라움에 가득 차 약간은 눈살을 찌푸리며 너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엘리펀트맨과 사라 바트만을 떠올렸을까. 가오리야 가오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