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중도에 붙은 자보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중도에 붙은 자보

mercredi 2003. 9. 25. 23:04
오늘 중도에 갔다가 어떤 자보 앞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땐 우리 학교 사람들이 언제부터 자보를 저리 열심히 봤나 의아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바로 그 자보 앞에만 계속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덩달아 궁금한 마음이 커져서 가서 읽어봤는데, 글쎄... 글쎄...

"민중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알 수 없는 단체에서 서울대인들의 이기주의와 엘리트의식을 비판하고 청년 조영래와 같은 서울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매우 비분강개해서 써놓은 것이었다.

자보의 소제목에서 서울대인들의 이기심이라는 말을 보고는 정말 의아했었다. 이런 내용 자보가 처음인가? 그렇게 읽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나? 제목치고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얼마 전에 있었던 화물연대 노동자분들이 학관 라운지를 며칠간 사용했을 때 몇몇 학생들이 불만을 표했던 일로 운을 띄운 이 자보는 딱 거기까지는 읽어줄만 했으나 정말로 맥락 없고 어이 없이도 학내 운동의 양상을 비판하더니 그 모든 화살을 여성주의 운동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유는 여운단위에서 정의로운 청년학생들을 별것도 아닌 짜잘한 이유로 마초집단으로 명명하고 비난하며 운동하는 그들과 연대하지 아니하며 분리주의 따위의 결별을 선언하고 그러면서 빼앗기고 억눌린 민중을 보지 아니하고 부르주아적인 내용들만으로 배부른 놀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나... 결론은 서울대생들은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음 좋겠다라던 전태일의 말에 크게 느끼고 운동을 하게 된 조영래 같은 청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더랜다. (나는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말을 할 때 뭐뭐했더랜다 라고 딴청식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자보의 내용 어디에서도 그들이 그토록 청년 조영래가 되어야 한다고 혼내고 훈계하는
마지않는 여성주의 운동에 대한 한치의 고려도 이해도 보이지가 않았다. 민중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그들은 여성주의 운동을 비판하면서 최소한 관악의 여운단위들이 뭘 해왔고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자보 한 장 자료집 한 권 읽어보지도 않았나보다. 자보중에 요새 관악엔 여성주의 학회나 모임 하나 없는 과가 없다고 비아냥거리더니 자기들 주변에는 여성주의 모임 하는 친구 하나 없었나보다.

그들의 운동이란, 청년학생이란 다 그렇고 그런 이미 지겹고 지겹게 들어온 것이고 그들의 사고와 감수성이란 이미 질리게 다른 곳에서 겪어왔으니 그것에 크게 화를 내며 내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않으련다. 그렇지만 오늘 내가 이렇게 홈페이지에 글까지 올리는 이유는 중도에 자보라는 형식을 통해 민중의 이름까지 들먹여가며 운동과 청년학생을 비분강개해서 외치며 그렇게 당당하게 할 말은 하는 그들의 용기가 가상해서이다. 민중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여,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