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아줌마의 글쓰기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아줌마의 글쓰기

mercredi 2003. 4. 27. 22:38
소녀시절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우리엄마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신다- 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신다. 본격적이라 함은... 글쎄, 일기장이나 혼자만 보는 웹상의 홈페이지를 벗어나 제법 틀이 잡힌 중년들의 커뮤니티에서 테마 게시판 하나를 책임진다는 것.

요새 집에 와보면 엄마는 집안일 하고 운동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언제나 뭔갈 끄적거고 계신다. 보기 좋다^^

그런데... 엄마가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선영아- 이리 와서 이 글좀 봐봐- 어디 고칠만한데 없어? 이 부분에서 더 멋진 단어는 없어? 엄마는 아는 게 너무 없잖아...그러니까 니가 좀 많이 갈켜주구 좀 다듬어 봐~ " 등등등. 등등등."

나는 거의 매번 매몰차게-.-; 평가를, 첨삭을--;; 거부한다. 누구 말을 빌리자면 "초 칠까봐"...

위에 인용부호 안에 있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겠지만...
엄마는 나에게, 서울대 인문대 물을 먹었다는, 맨날 엄마 앞에서 잘난척 하느라 바쁜 딸이 뭔가 많이 알고... 엄마의 글을 좀 더 멋지고 윤기나게 해 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엄마 글은 엄마가 쓰는 거지 그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거라고... 그러면 외려 글을 망치게 된다고, 그래서 하기 싫다고... 난 감상평 정도는 할 수 있어도 내가 뭔데 엄마 글에 손을 대냐고 하면 우리 엄마는... 삐진다 -.-;;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에 관심을 안 가진다나...

어제는 아예 첨삭을ㅜ.ㅜ 해 달라는 엄마에게 이러이러하니 난 봐 줄 수 없다 라며 국어사전 하나 던져놓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가 엄청 싸웠다...-.-;; 젠장젠장젠장. 왜 그렇게까지 싸웠아야 했던 게지...

난,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초칠까봐 애써 모른 척 하는 건데... 엄마가 이제사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때론 고민도 하면서 하는게 너무 보기 좋고, 계속 북돋아 주고 싶은데... 엄마가 원하는 코멘트들을 그냥 그렇게 주다보면 책임질 수 없는 간섭이 될까 겁이 나기 때문인데...

"나는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글쎄... 이상하다. 평소엔 너무나도 자존심 세고 도도한 왕비병^^;인 우리 엄마가, 글쓰기라는 분야에선 왜 이렇게 움츠러드는 걸까. 글 쓰기. 문학, Litrature, litarary, litaracy, illitaracy이런 말들이 떠오르는군. 글을 쓰려면 뭔갈 많이 '알아야'하고, 그래 쉽게 말해 유식해야 한다고 엄마도 모르게 여기고 계신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했던 말 같은데, 우리 엄마는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이 가지는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그 어떤 여성주의 이론서 보다도 명확하고 급진적으로, 그러면서 너무 쉽고 자연스러운 언어로 풀어냈는데... 그런 사람인데... 대체 뭘 얼마나 모르고 무식하다는 말인가. 지식은, 대체 누구의 지식인가. 뭐가 지식이고 뭐가 잡다한 정보인가.

가진자와 힘 잇는 자의 기준에서 가치있고 고상한 세련된 지식들을 혹은 그런 언어들을 분류해내고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값싸고 저속한, 유치한 것들로 치부해 버리는 이런 구조의 희생자인 것이다, 우리 엄마 역시.

구조 탓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나 부터도... 차라리 내가 서울대를, 아니 아예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아니아니... 집에 와서 엄마한테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로 잘난척 하지 안았더라면...

조금은 씁쓸한 기분.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다.

엄마, 엄마 글 너무 좋아... 나, 계속 열심히 읽고 있어... 남들거랑 비교하지 말고 그냥 계속 혼자 고민하면서 더 이쁘고 멋진 글들 써...엄마 홧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