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안다와 모른다의 의미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안다와 모른다의 의미

mercredi 2004. 2. 26. 16:54
요즘 가르치는 학생은 솔직히 공부를 못하는 아이이다. 이제 고1이 되는데 전반적인 수준이 중1이 될까말까 하고 특히 수학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없을 뿐더러 이해력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리고 평소 공부를 멀리하는 녀셕이라 공부 시간과 양이 늘어나면 금방 울상을 지으니(사실 소화불량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정말로 최대한 쉽게 조금씩 해도 가르치기가 많이 벅차다. 하여 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참 답답하고 애먹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2주일이라는 시간을 두고 최소한 다섯 번 이상(아마 열 번일지도 모른다.) 조목조목 설명을 해 주어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녀석을 보고 있으면 깝깝하기 그지 없다. 결론은 녀석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잘 모른다.

녀석 나이의 나를 기억해보면 나는 녀석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실재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들어오고나서는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아니 어쩌면 거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래서 더, 더 많이 알기 위해 발버둥쳤다. '알아야'했다. '알고'싶었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나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더 당당하고 자신있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명제였고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알기 위해 '앎', '아는 것', '안다' 이런 말들에만 집중했다.

대학에서 구른지 3년, 이제는 조금은 예전에 비해 아는 것이 늘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는 오만한 생각도 종종 든다. 그렇지만 요즘 이녀석을 가르치면서 내가 미처 정말로 알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아는 것'에만 집착해서 '모르는 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의 한심한(미안하다 영실아...) 수준을 날마다 접하면서 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 솔직히 정말 궁금해졌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나서 그 아이 어머니로부터 '우리 애는 공부 정말 못 합니다. 그러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저 막연하게 '아, 성적이 별로 좋지 않고 평소에 공부를 안 하나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내가 처음 생각했던 그 이유들은 너무나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했다. 대체, 대체 어떻게 어떤 사연과 과정들을 거치면 영어 수학 과외를 중1때부터 한 아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일까. 솔직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3주일동안 매일매일 녀석을 가르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으니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다. 그리고 내가 정말 몰랐고 알 수도 없었던 소위 공부 못 하는 아이의 생활, 일상, 심성들이 조금은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해가 가니 예전에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수능모의고사 200점이 안 나오는 친구들이 조금 이해가 가는 듯도 싶다.

고백하건데 처음에는 친구들이나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이번에 아주 한심하게 못 하는 애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그 아이 흉을 많이 봤다. 이제는 용돈 이상으로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그녀석과는 전혀 상관 없는 스트레스를 마치 녀석 때문인 양 흉을 보며 가학적이고 비열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감히 그런 말은 다시는 못할 듯. 아는 것에만 집착해서 모르는 것의 의미를 전혀 몰랐던 내 모습은 녀석 없이는 깨닫기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오직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메아리치는 내 안의 소리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도 있다.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의 그림자인데 그림자를 모르고서 실체를 알겠다고 덤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또 그림자를 무시하고서 실체를 안다고 으시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고요한 마음으로 지식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진정한 앎이 오는 것일텐데 말이다.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사람은 날마다 어디에서든 배운다. 그렇지만 한가지를 알았다고 해서 한가지 뒤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