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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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유세

mercredi 2003. 11. 11. 16:58
오늘은 인문대 선거 2차 유세날이었다. 아무리 이제 아무 일도 안 하더라도 선거나 430같은 굵직한 일들에는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평소의 다짐 때문이었을까,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유세는 꼭 봐야겠다는 마음에 해방터를 찾았다.

1차 유세가 있던 날이었나, 라운지에서 만난 준형오빠가 유세가 칼타임으로 시작했냐고 물어보며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것 처럼 보이는^^;)표정을 지었던 것이 문득 생각난다. 오늘도 유세는 거의 칼로 시작했다. 선거 유세라는 중요한 행사를 할 때 학우들과 한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은 의당 당연한 일인데도 관악타임이 점점 없어지는 사실이 어느정도는 낯설은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 같은 기본이 그동안 지켜지지 않다가 이렇게 다 망해가는 시점에 지켜지는 것은 어인 일인지...

이번 선거에 나온 세 선본들... 그들의 이야기... 들으면서 읽으면서 참 많은,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오고갔다. 아직까지도 어찌나 말이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 한지. 작년이나 제작년 보다도. 나름대로 할말이 많지만 이런 말들은 개인 홈페이지보다는 과방이나 라운지에서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듯, 패스.

여튼, 바들바들 떨면서 해방터 계단 한 켠에서 2차유세를 바라보니 그동안 내가 본 유세들, 그리고 선거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것은 01년 에갈리아 선본을 뛰었을 때였다. 비가 와서 다 젖은 해방터에서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 문선을 하는 새내기 선본원들을 보니 내가 '새내기 선본원'이었던 그해 가을의 모습이 겹쳐서였기 때문일까...^^

그때 국사과 병수오빠가 후보였고(안타깝게도 떨어지기는 했지만^^;) 본짱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 아마도 밍밍? 그리고 우리는 가장 투박하게 생긴 슈렉 색깔(!) 에갈리아 옷을 입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맞춰 전투마임을 했다. 칼마임이라는걸 처음 배워보는지라 팔다리 관절이 뻣뻣해져서 선배들에게 힘들다고 칭얼댔던 기억, 밤새 연습하다가 간식 사달라고 보채고 선배들이 장난으로 쌩까니까 어디서 이상한건 배워가지고^^; 선본실 앞에서 간식투쟁 연좌농성 벌였던 기억... 선본 회식때 막간 아이앰그라운드를 했는데 다들 한다는 것이 총화, 예각화, 민중!, 민주의! 이런 것이었던 어이없는 기억들...--; 1학년 때 선거를 뛰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공인된 기억력을 지닌 나는^^; 이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기옥만으로 남기기 싫은 기억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금이라도 동작이 틀릴까봐 잔뜩 긴장하면서 어설픈 마임을 하고있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선배들의 눈빛이다. 지금은 IMC가 공사중이라 그쪽 잔디에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작년까지 그 자리는 고학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유세를 보는 자리였다. 별로 쓸데 없는 기억이긴 하지만 주로 삼사과 고학번들은 IMC잔디에서, 불문과로 보이는 고학번들은 5동 2층 불문이반 과방 옆 베란다에서 유세를 보곤 했던 것 같다.

해방터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초긴장 상태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던 중 가장 나의 뒷통수를 찌르던(혹은 쓰다듬던? ^^) 우리 과/반 선배들의 눈빛. 왜일까, 오늘 더욱 또렷하게 기억나는. 기억이란게 원래 자의적으로 철저히 재구성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눈빛들은, 그 눈들은, 그리고 그 얼굴들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웃음이었냐면 만면에 "아이고 이뻐라^^*"하고 써 있는 그런 웃음.

사실 그땐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마임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내 눈에 비친 그들의 표정도 단순히 웃는 얼굴로만 인식되었을 뿐. 그런데 올해, 이제 곧 내 세 번째 후배들은 어떤 녀석들일까 궁금해 하면서, 그래도 아직 1학년이라고 우기고 싶어하는 듯한 03학번들이 선거를 하는 모습을 내가 해방터 한 켠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제작년 그 때 그 언니들의 그 오빠들의 표정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이제사 조금은 읽히는듯 싶다.

언제나 나는 부족한 선배라는 자책감에 과방에 드나들 때, 후배들을 만날 때,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아왔다.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그런데 이런 일들을 통해 드러나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무거운 마음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평소에는 잘 보지 못 했던 그/녀들의 반짝거리는 모습들, 열심히 하는 모습들, 풋풋한 모습들을 보니 기운이 다시 솟는달까. 사실 내가 선배로써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지 후배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여기면서 거두고 챙기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2차유세, 이제 2주간의 선거기간이 거의 마감되고 내일부터 투표. 사실 선거 기간동안 학생회는 무슨 일들을 하고,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여야 하는지, 심지어는 지금 이 시점에 학생사회가 학생회를 필요로 하는지 학생사회가 있기는 한 건지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선거가 거의 막바지인 지금, 내 잠정적인 결론은 그래도 학생회는 있어야 한다이다. 요즘 단대 선거도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해서 허덕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때 관악 정치 1번지 소리를 듣던 인문대도 그리 나은 상황은 아닌듯. 씁쓸하다. 그렇지만 제발 내일과 모레는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내년은 지금처럼 씁쓸하지만은 않기를 빌어본다. 오랜만에 이 말이 외쳐보고 싶구나...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