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부끄러움 본문

=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부끄러움

mercredi 2003. 7. 5. 00:09
글을 안 쓴지가 이렇게 오래 됐다니!!! 수련회 다녀오고 나서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걸까ㅜ.ㅜ 수련회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오직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이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잠은 자도자도 모자라고 밥은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고... 몸에 기운은 하나도 없고 학교 가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이나 듣고... 사실 듣고 싶었던 말은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구나!!!"였는데...^^;

부끄러웠나보다. 안 좋은 내 모습을 드러내기가. 동시에 언제나 혼자는 외롭다. 혼자는 너무도 외로워- (크라잉넛, 베짱이中)

요즘 에니어그램 책 읽고 있다.

이 집에 놀러와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은 혹시 알고 있는가? 에니어그램 책 읽고 있다는 저 짧은 문장 하나 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얼마 안 되는 손가락 놀림이 얼마나 떨리고 무거웠는지... 일단 써놓고 난 지금은 마음이 훨씬 가볍다.

왜 정선영이는 "요새 에니어그램 책 읽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기가 힘 들었을까. 일단 에니어그램이 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도록 하자.

그 기원이 대단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에니어그램은 수피교 수도승들이 사용하고 발전시켜온 수행 방법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것이 현대의 심리학과 만나고 여러 사람들의 연구와 수행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에니어그램에서는 각각의 근원적인 집착에 따라 인간의 유형을 크게 아홉가지로 나눈다. 각 유형들에는 1부터 9까지의 번호가 붙는데 번호는 단지 번호일뿐 번호 사이에 우열의 정도는 없다. 그리고 그 유형들은 타고난 것으로 평생 달라지지 않는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우선 자신의 유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책이나 워크샵등을 통해 찾아가며 좀 더 내밀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아닌 유형들에 대해 배우며 다른이들(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이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에니어그램은 얼핏 보면 흔한 성격심리테스트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단선적이고 즉흥적인 성격(내지는 성깔--;)이 아닌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집착과 강박을 찾아내어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자아 발전의 길로 한 걸음 더 내딛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그런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그 의미와 효과가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설명은 이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한 것 같으니... 내가 요새 에니어그램 책을 읽는 이유는 어딘지 너무 많이 꼬여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에니어그램 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만사가 다 풀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 책들은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뿐이다. 그러나 복잡한 자기 자신과 그 안의 문제들을 풀 방법조차 캄캄할 정도로 모르는 나는 일단 길을 걷기 이전에 남들이 꽤 유용하다고 하는 지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눈 부릅떠가며 살펴보는 중인 것이다.

한 번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말이 훨씬 편하게 나온다. 그래, 나는 스스로가 두렵고 힘든 모습을 보이기가 너무나도 싫었던 것이다. 잘 모르는 남들이 에니어그램 책이나 읽고 있냐고, 그렇게 나약하냐고 비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에니어그램따위 없어도, 에니어그램 말고도 다른 인생의 길라잡이 책 따위 없어도 빠릿빠릿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혼자서도 뭐든 잘 한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

아픈건 부끄러운게 아니란다. 힘든것도 그렇게 부끄러운게 아닐 것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는게 당연하듯 마음이 아프면 그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만약 나를 보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비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 사람이 쥐뿔도 모르고서 잘난척 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게으름과 기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