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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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餘的話= 2001~2007/=多餘的話= 第一期

헛짓

mercredi 2003. 5. 13. 01:47

정말 오랜만에 과외비란걸 탔다. 아이 어머니에게서 돈이 든 두툼한 봉투를 받아 손에 쥔다. 습관적으로 액수가 맞는지 세어본다. 이제는 나도 돈이 생겼다는걸 안다. 과외가 끝나고 돌아오는 컴컴한 흑석동 골목길. 등에는 그 봉투가 느껴진다. 그건 거기에 있다.
이상하다. 아무렇지도 않다. 오랜만에 꽤 많은 돈이 내 소유가 되었는데 기분이 뿌듯하지도, 뭔갈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이지도 않는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갔다. 대학교 근처라 그런지 내 또래의 여자들이 많다. 저기 뭔가가 눈에 띄게 반짝거린다. 악세사리 자판이다. 아... 그래서 저 근처에 더 많이 있는군... 귀걸이, 목걸이, 머리핀... 이쁜 것들이 많다. 맘에 드는 것을 살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 내겐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들뜨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도 맘에 드는 녀석들을 두 개 골랐다. 파는 총각한테 깎아달라했더니 천원을 쉽게 빼준다. 귀걸이를 사고 뒤를 돌아보니 음반점이 있다. 바로 어제까지 친구들에게 요샌 돈이 없어 시디 한 장 못 산다고 징징거리던게 기억난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 좋아하는 밴드의 시디를 샀다. 버스에 타자마자 비닐을 뜯고 플레이어 안에 넣고 들었다. 좋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처럼 방방 뜰만큼 기쁘진 않다. 마치 이미 마음이 떠난 애인과 습관적으로 만나고 노는 그런 기분이 이럴까. 그냥 그동안 그래왔으니까 하고 손 잡고 안고 만지는 게 이런 기분일까. 한 편으로는 이제 나도 적어도 한 부분의 집착에서 좀 자유로워졌나봐! 하면서도 이건 영...

오늘 내 소비는 마치 그래도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잖아! 하면서 어거지로 오기로 서로를 부등켜안고 몸둥이를 부비는 것과 비슷하다는 결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