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s child, Mercr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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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2호선 지하철 안.
서울대입구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피 한 장.
이주노동자 투쟁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뻘쭘함과 그보다도 더한 승객들의 무관심을 무릅쓰고 뿌렸을 피가
문과 의자 사이 좁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도 잠시 피세일을 하던 때가 있었으렸다.
'피'를 뿌리다가 손가락에 '피'가 맺혔던 적도 있었으렸다.
방금 뽑아온 따끈따끈한 피를 한 뭉텅이 품에 안으면
그 알싸한 잉크냄새가 코를 찔렀으렸다.

문이 열리고 그냥 내려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
춥고 피곤한 졸린 몸을 달랠 수도 있었지만,
잠시 허리를 숙여 버려진 피를 줍는 것은
대단한 수고도 아니리라.

줍자마자 나는 마치
오랜동안 만나지 못 했던 그리운 연인에게 입맞추듯이
급히 그 피를 코로 가져가 예의 그 알싸한 잉크냄새를 찾아본다.
그렇지만 내가 알지 못할 만큼의 시간 동안 2호선 지하철 안을 굴러다녔던
그 피에서는 피냄새가 나지를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는 피를 대강 읽어본 후
내 가방 깊숙한 곳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으로 급히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