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多餘的話= 2001~2007 (105)
Wednesday's child
조금은 무거워진 것 같아. 어제도 오늘만큼 우울하다는 전자양의 노래 가사를 계속 흥얼거리며 진정제를 놓고있기는 하지만, 미친년처럼 '아스피린 두 알 달라고' 흥얼거리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워. 조금은 묵직한 것이 마음안에 들어찬 것 같아. 아마도 성장통이겠지. 그렇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그땐 이미 더이상 소녀가 아닌 것인데 말이야. 난 이제 그때의 그 소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그치만, 내가 정말 잘 쓰는 말인 '제대로'. 만약 내가 제대로 큰 거라면 제대로 한 발자욱 나아간 것이라면 그 소녀는 언제라도 거기 그 자리에 항상 남아서 예쁜 꿈을 고운 꿈을 꾸고 있는걸거야. 그리고 한 치 자란 만큼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게 된 걸거야. 아마도 지금은 전보다 높아진 고도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는..
맑디 맑은 눈을 하고 언제나 경쾌한 발걸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서 나의 무릎을, 품을 원하는 저녀석을 보면 조금은 걱정스럽다. 혼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어젯밤에도 계속 같이 자자고 침대로 기어올라오려는 녀석을 (차피 아직 키가 작아서 혼자 힘으로는 못 올라오니까...) 난 멀뚱한, 혹은 어짜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발치로 와서 계속 무릎 위에 올려달로고 끙끙거리다가 포기를 하고는 햇빛을 받으며 창가에서 풋잠이 들어있다. 녀석의 끙끙거리는 소리는 인간의 울음소리와 너무나도 흡사하여 듣고 있는 내 마음은 정말 안타깝고 또 아프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녀석을 돌봐줄 수 있지 않기에... 이렇게 일견 차가워보이는 태도로 녀석을 쌩깔 뿐. 아..
수업커뮤니티 때문에 오랜만에 프리챌에 접속을 했더니 지지난 학기 서양문명의 역사 수업을 들었던 인연으로 알게 된 선생님으로부터 단체 쪽지가 와있었다. 아직까지 그 수업커뮤니티 탈퇴를 안하고 있었더니 수강을 안하는 나에게도 쪽지가 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02년 2학기 때 수업을 들을 때에도 상당히 열의있고 인간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시던 것이 내겐 퍽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았고 또 언제나 밝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매사에 임하시는 모습이 나에게 일종의 희망과 목표처럼 기억됐었다. 선생님은 우리학교뿐만이 아니라 연대와 한신대에서도 강의를 하시고 또 결혼을 하셔서 아이도 둘이나 되시고 게다가 댁은 길동이시란다. 서울 안에서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사각형 - 이것이 선생님의 활동범위인 ..
좋아졌다. 어느순간부터 프리챌 커뮤니티에 점속하면 회원들의 생일을 미리 알려주는 팝업창이 뜬다. 싸이월드를 하면 화면 한 귀퉁이에 내 일촌들의 생일을 카운트다운 해준다. 덕분에 미처 외우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지인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좋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내가 지인들의 생일을 잘 챙기게 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래 이번달 몇일이 아무개 생일이지...' 생각만 들 뿐이고 그놈의 생일 공지덕분에 나는 더 게을러졌달까... 그래서 그만큼 곧 다가오는 내 생일이 조금은 두렵다. 만약 아무에게도 선물을 받지 못하면 이 소심한 녀석은 곧 삐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생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러면 선물은 대체 뭔데... 안받아도 괜찮아.' 하지만 분명 그날이 되..
요즘 가르치는 학생은 솔직히 공부를 못하는 아이이다. 이제 고1이 되는데 전반적인 수준이 중1이 될까말까 하고 특히 수학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도 거의 없을 뿐더러 이해력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리고 평소 공부를 멀리하는 녀셕이라 공부 시간과 양이 늘어나면 금방 울상을 지으니(사실 소화불량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정말로 최대한 쉽게 조금씩 해도 가르치기가 많이 벅차다. 하여 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참 답답하고 애먹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2주일이라는 시간을 두고 최소한 다섯 번 이상(아마 열 번일지도 모른다.) 조목조목 설명을 해 주어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녀석을 보고 있으면 깝깝하기 그지 없다. 결론은 녀석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잘 모른다...
과외 끝나고 학교에 들렀다가 밤까지 03아이들 과방미화 하는 것을 도와주었어. 대략 중노가다였지만 정말 즐거웠어^^ 어둑어둑한 학교길을 종알종알 이야기 하면서 다같이 정문까지 내려가는 그 시간은 정말이지 말로 못하게 즐겁고 소중한 시간^^ 내일 신환이 기대되는걸? ^^
어제 면접을 마치고 라운지에서 잠시 노가리를 깐 후 밥을 먹으러 학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방궁 근처를 "어~ 춥다춥다~"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야옹- 야옹- 야옹-" 마치 사람이 '정선영-"하고 불렀을 때와 느낌이 그닥 다르지 않다. (신기하다) 돌아보니 검정과 고동색이 아주 패셔너블하게(!!!) 섞인 냥이 한 마리가 금방울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니가 불렀냐?" "야옹-" "어라^^; 언니랑 놀까?" "야옹!" "배고파?" "야옹!" "소세지 사다줄까?" "야옹!!" "^^;;" 양이는 춥고 발이 시려워서 눈 온 바닥으로는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발은 조금 다쳤는지 계속 오므리고 있다. 처량하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녀석을 쓸어주..
오늘은 전공진입을 위해서 학교에 왔다. 전필에 권총 두자루 때문에 의례 진입 안 되려니 하고 있었는데 아 꽈사에서 연락이 오네... 전공진입 하라고... 권총이 있더라도 규정상 4학기 이상 등록에 66학점 이상만 이수했으면 전공진입 일단 하고 권총은 나중에 재수강 하면 된다고... 얼마 안 남은 인문계학과군 아이들을 다 배정시켜버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 여튼 덕분에 불량대학생--;인 나는 구제된 셈이다. 오늘 서류는 다 냈고 나중에 서사과 과사에 면접일정만 알아보면 된다. 한숨을 크게 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동안 4학기가 넘도록 전공 없이 인문계학과군으로 나아있는 것이 나름대로 큰 부담이었기에... 그게 어디 가서 남들이 대학생이면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 서양사학과 다닌다고 하자니 사실 아직 진입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2호선 지하철 안. 서울대입구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피 한 장. 이주노동자 투쟁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뻘쭘함과 그보다도 더한 승객들의 무관심을 무릅쓰고 뿌렸을 피가 문과 의자 사이 좁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도 잠시 피세일을 하던 때가 있었으렸다. '피'를 뿌리다가 손가락에 '피'가 맺혔던 적도 있었으렸다. 방금 뽑아온 따끈따끈한 피를 한 뭉텅이 품에 안으면 그 알싸한 잉크냄새가 코를 찔렀으렸다. 문이 열리고 그냥 내려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 춥고 피곤한 졸린 몸을 달랠 수도 있었지만, 잠시 허리를 숙여 버려진 피를 줍는 것은 대단한 수고도 아니리라. 줍자마자 나는 마치 오랜동안 만나지 못 했던 그리운 연인에게 입맞추듯이 급히 그 피를 코로..
연장투표를 이틀이나 했는데 잠적 집계한 최종 투표율이 46.86%랜다. 너무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서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50.##% 하는 거랑 뭐가 크게 다른가? 어차피 반쪽 학생회 이야기는 나 1학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계속 나오던 이야기. 지금이 바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인가? 만약 그렇다면 2003년은 정말로 슬픈 해이다. 방금 스누나우에 가봤는데 이번 총학선거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3월에 재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함. 11/26 14:14 x